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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프린터와 떠나는 테마여행 14탄] 베토벤과 그 가족들
2016-06-30 11:55:39

베토벤은 너무나 유명한 음악가죠. 

간단하게 약력을 알아보면,

루트비히 판 베토벤(독일어: Ludwig van Beethoven, 1770년 12월 17일 ~ 1827년 3월 26일)은 독일의 서양 고전 음악 작곡가이다. 독일의 본에서 태어났으며, 성인이 된 이후 거의 오스트리아 빈에서 살았다. 감기와 폐렴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투병하다가 57세로 생을 마친 그는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전환기에 활동한 주요 음악가이며, 작곡가로 널리 존경받고 있다. 현재 그는 음악의 성인, 악성(樂聖)이라고 불린다. 가장 잘 알려진 작품 가운데에는 〈교향곡 5번〉, 〈교향곡 6번〉, 〈교향곡 9번〉, 〈비창 소나타〉, 〈월광 소나타〉 등이 있다. <위키백과 참조>

 


오늘은 베토벤의 가족사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아래 움직이는 사진2개는 베토벤 흉상을 애니메이션 효과를 준 겁니다.

<lincoln3dscans.co.uk 사이트에서 가져온 겁니다.>

 

 

공이 나와서 베토벤의 머리를 맞히고, 튀겨나가네요...재밌네요^^


Zortrax M200 3D프린터로 출력했습니다.

레이어두께 : 0.14mm

출력소재 : ABS, Cool Grey 색상

출력시간 : 19시간 20분
출력물 상태 : 서포트 제거하고, 서포트랑 연결된 부분만 살짝 다듬었습니다. 사포질등 후가공 전 상태입니다.

 

 

 

 

 

약간 위에서 본 모습입니다.

 

 

베토벤의 가족사를 한번 살펴볼까요.

 

베토벤의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모아본 겁니다.

베토벤의 음악적 재능은 어릴 때부터 두각을 드러내어, 9살 나이(속설에서 말하는 7살이 아닌)에 공연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당시 레오폴트 모차르트의 명성을 알고 있던 아버지 요한은 아들을 신동으로 삼아 돈을 벌려 했으나 결과는 시원찮았다. 1778년 3월 베토벤의 첫 대중 공연회 포스터에서 요한은 거짓말로 아들 베토벤이 6살이라고 주장하였지만 실제로는 7살 4개월, 즉 8살이었다. 다시말해 아들 베토벤의 재능을 인정받기 위해 2살을 속였지만 큰 효과는 보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이때문에 베토벤은 자신의 실제나이를 2살로 적게 알고 살게 되는데 훨씬 후에야 자신의 실제 나이를 알게 된다.또 아버지는 베토벤을에게 피아노 연주를 시켜번돈으로 술을 사먹으며 흥청망청 썼다.

 


베토벤은 종종 폰 브로이닝 집안에 갔는데, 여기서 그는 독일 문학과 고전 문학을 접하였으며, 이 곳 아이 몇몇에게 피아노를 가르쳐주었다. 폰 브로이닝 가의 환경은 알코올 의존증환자인 아버지의 통제가 점점 심해지는 자신의 집안에 비교한다면 편안한 곳이었다.

 


베토벤의 형제 및 가족에 대한 얘기입니다.

어머니 마리아는 원래 모두 7남매를 낳았다. 장남인 루드비히 마리아는 태어나자 마자 곧 죽었고, 둘째가 루트비히 판 베토벤이다. 셋째 카알과 넷째 요한을 낳은 후에도 낳은 자녀들도 모두 일찍 죽었다. 어머니가 죽은 후 살림을 맡아 준 가정부가 있었지만 실질적인 부양은 베토벤의 몫이었다. 첫째 동생인 안톤 카알(Anton Karl Beethoven : 1774~1815)은 형과 같이 작곡가가 되려고 했지만 일찍 포기하고 세무서원이 되었다. 피아노를 웬만큼 치기는 하였지만 별다른 재능이 없었기에 나중에 형의 평판이 높아지자 형의 작품을 처분해서 한 몫 보려는 생각으로 형이 출판을 꺼려했던 초기의 습작들을 팔아치우는 등 여러가지로 형을 괴롭혔다. 베토벤 전기 작가인 세이어(Thayer)는 바가텔집 작품33과 가곡 작품52 등으로 추측하고 있다. 카알의 아들도 삼촌인 베토벤에게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을 안겨주었다.

막내동생인 니콜라스 요한 역시 베토벤에게 골치아픈 존재였다. 형의 도움으로 약제사가 된 그는 상당한 돈을 모은 다음에는 형에게 돈을 빌려주고는 그것을 미끼로 형의 작품을 마음대로 처분했다. 품행이 단정치 못한 여인과 결혼할 때에도 형의 반대를 꺾고 결혼한 뒤로부터는 더 멀어졌다. 상재가 대단해서 제법 재산을 모았으나 베토벤이 어려운 곤경에 처했을 때에도 결코 도우려고 하지 않았다.

 


뒤이어 후원을 계속해주는 사람이 없었으며 베토벤은 대개 작품의 권리를 팔거나 1815년 이후 적은 연금에 의지하였다. 

1770년생이니까, 1815년이면 45세네요. 그리고, 1827년에 사망했으니까 인생말년기인 12년 동안은 궁핍하게 살았나 봅니다.

그 시대의 음악가들은 귀족들의 후원을 받아서 생활하기도 했고, 베토벤이 젊었을때는 연주 여행 등으로 돈도 꽤 벌었을 거라고 합니다만, 결국은 경제적으로는 어려운 인생말년을 보낸것 같습니다.

 


실질적인 가장으로 생계를 책임지고, 아버지를 비롯한 형제들을 맏이로써 물심양면 도와줬을텐데, 가족들은 베토벤에게 짐이됐을 뿐이네요.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인데도, 부자 동생은 외면하구요. 개인적인 삶은 꽤 괴로움이 많았을 것 같네요.

이러한 삶의 굴곡도 베토벤의 작품 어딘가에는 묻어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예술가의 창작작품에는 예술가 본인의 삶에서 배어나오는 향기가 묻어있을 수 밖에 없지 않을까요?

 


위대한 예술가들의 삶을 보면, 행복하지 않은 경우도 꽤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저같은 일반인들의 관점으로 봤을때 말이죠.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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