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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프린터와 떠나는 테마여행 26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The Vitruvian Man(인체 비례도)
2016-08-17 18:30:43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The Vitruvian Man(비트루비안 맨, 인체비례도)을 이태리의 조각가 Enzo Plazzotta(1921 ~ 1981)가 조각상으로 만든것입니다. 런던의 Belgrave Square에 있습니다. 


이 작품을 3D프린터로 출력해봤습니다. 

3D프린터 : Zortrax M200

소재 : HIPS

소재 색깔 : Cool Grey

소재 사용량 : 22m (56g) 

레이어두께 : 0.14mm

출력시간 : 10h 26m

출력물 크기 : 100 * 24 * 100 mm

출력물 부피 : 46.52 cm³

출력물 상태 : 서포트 제거하고, 후가공은 안함.

 

서포트 제거 전입니다.

팔을 벌리고 서있는 모습에다가, 네모 모양 등...서포트가 많이 설 수 밖에 없는 출력물의 형태네요.


서포트 제거 후입니다.

보시는 대로, 네모 원형안에 서포트가 많이 세워졌는데, 그거 떼내다가 네모, 원형이 부러져서, 다시 그 부분만 출력해서 땜빵하느라, 원형, 네모 모양은 좀 지저분해졌습니다. 이 부분은 이해 바랍니다.^^;

인체 모양은 그런대로 표현이 된 것 같습니다.









레오나르도 디 세르 피에로 다 빈치(Leonardo di ser Piero da Vinci, 1452년 4월 15일 ~ 1519년 5월 2일)는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근대적 인간의 전형이었고, 그는 화가이자 조각가, 발명가, 건축가, 기술자, 해부학자, 식물학자, 도시 계획가, 천문학자, 지리학자, 음악가였습니다.

 

<비트루비안 맨>은 로마의 유명한 건축가 비트루비우스(Marcus Vitruvius Pollio, 80–70 B.C. 경 - 15 B.C. 이후)의 저서를 접하고 다 빈치가 이를 드로잉으로 그려낸 것이다. 피렌체의 메디치 궁전에 자주 드나들었던 그는 그곳 서고에서 비트루비우스의 책을 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체는 비례의 모범이다. 사람이 팔과 다리를 뻗으면 완벽한 기하학적 형태인 정사각형과 원에 딱 들어맞기 때문이다.”라고 서술한 비트루비우스의 글을 따라 다 빈치는 두 팔과 다리를 벌리고 선 남성의 인체를 원과 정사각형의 선으로 둘러 그 안에 인체가 완벽히 합치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다 빈치는 비트루비우스의 글을 그대로 따랐던 것은 아니며, 실제 인체를 직접 관찰하여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 부분에 대해서 수정을 가했다. 다 빈치의 관찰 결과 인체를 따라 그려진 원과 정사각형은 실제로 그 중심이 일치하지 않았으며, 배꼽은 이 중심보다 약간 아래에 위치했다. 뿐만 아니라 비트루비우스는 팔을 아래로 내려뜨려 손끝이 배꼽을 통과하는 선에 맞춰 비례를 설명했다면, 다 빈치는 두 팔을 머리 높이까지 올림으로써 비트루비우스의 서술과는 차이를 보였다. 이처럼 그는 대상에 대한 직접적인 관찰을 매우 중요시하는 경험주의적 사고관을 지녔으며 관찰에 어긋나는 것은 과감히 혁신함으로써 과학에 한 발 더 다가가고자 했다.

 

이 드로잉에서는 비율에 대한 관심과 인간을 우주의 원리와 연결시키려는 다 빈치의 시도를 볼 수 있다. 그는 인체 속에는 완벽한 질서가 숨겨져 있기 때문에 전체 질서의 축소판이 바로 인체라고 믿었다. 따라서 소우주인 인간의 신체는 우주 만물을 재는 척도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기본적인 측정단위로 손가락, 손바닥, 발, 팔꿈치의 길이 등을 측정 단위로 설정했다. 도판 위아래에 적힌 문구는 거울에 비친 상처럼 좌우가 반대로 되어있는데, 여기에는 그가 인체를 중심으로 설정한 여러 측정 단위들이 표기되어있다.

 

인체를 만물의 척도로 바라보는 이러한 관점은 르네상스의 인간 중심주의를 반영한 것이다. 이 드로잉은 이러한 인간 중심의 과학은 예술과 어떻게 융합되었는지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이다. 다 빈치를 포함한 르네상스의 화가들은 그림에 가장 이상적인 인체를 담아내기 위해 아름다움을 정확한 수학적 비례를 통해 규명하고자 했다. 르네상스의 과학적 사고는 원근법과 명암법 탄생의 바탕이 되었으며 과학적 사실주의는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서양미술의 근간이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비트루비안 맨 [Vitruvian Man] - 레오나르도 다 빈치 (wikimedia commons, 위키미디어 커먼즈)

 

이 조각상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The Vitruvian Man(인체 비례도)' 또는 'Canon of Proportions'을 기념하는 가장 유명한 작품중의 하나입니다. 

이 작품은 Homage to Leonardo(레오나르도에 경의를 표하다), 종종 다빈치의 원작명인 Vitruvian Man(인체 비례도)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Plazzotta가 죽은 후에 조수였던 Mark Holloway가 1982년에 완성해서, 1984년에 런던의 Belgrave Square에 세워졌습니다.

 

1000년의 기나긴 유럽의 중세시대가 막을 내리고 인간 중심주의(인본주의)를 표방한 르네상스의 시대가 열리고, 르네상스시대는 중세와 근대를 연결해주게 됩니다.

우리는 유럽의 중세를 암흑기로 역사시간에 배웠습니다만, 중세 시대를 재 평가하는 글들이 여기저기 보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많은 움베르토 에코의 유럽 문명사 대기획 첫 권이 작년에 국내에 소개가 되었습니다. 

 

<중세1: 야만인, 그리스도교도, 이슬람교도의 시대>

에코는 이 책에서 중세가 근대와 완전히 분리된 1000년의 암흑기였다는 편견을 뒤집으려고 한다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중세가 오늘날 유럽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중세는 철학을 신학의 시녀로 만들었다는 지적이 있지만, 이 또한 단견이라고 한다. 박승찬 가톨릭대 교수는 9일 강연에서 “중세는 신앙과 이성의 조화를 추구했으며 그리스도교와 그리스철학이 만난 ‘양수리’와 같은 시대”라고 설명했다. 800년 동안이나 그리스도교의 최고 스승이었던 아우구스티누스(354~430)는 첫 중세 사상가로서 특히 고대 그리스철학과 그리스도교라는 신학을 온몸으로 체화한 인물이었다.

“중세의 세밀화를 보면, 빛이 사물에서 나와 사방으로 퍼지는 것 같다”며 에코는 중세가 암흑기라는 생각에 강하게 이의를 제기한다. 유럽의 중세는 동서양 문화의 접변이 이뤄진 ‘용광로(멜팅 폿)의 시대’이자 고대를 계승하고 근대의 씨앗을 품은 ‘빛의 시대’였다는 것이다.

“중세는 암흑기 아니라 ‘오늘’ 만든 찬란한 시대”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702583.html> 인용함.

위키백과의 사진 및 내용도 인용하였습니다.

 

모델링 데이터 소스 위치 : https://www.myminifactory.com/object/the-vetruvian-man-sculpture-at-belgrave-square-london-1669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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