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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프린터와 떠나는 테마여행 31탄]아우구스투스 (로마 최초의 황제)-이길때 까지 살아있으라.
2016-10-24 19:29:06

영어로 8월 달을 August 라고 하죠.
August(8월)의 어원이 로마 최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입니다.
참고로, 7월(July)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이름에서 유래가 되었습니다.

아래 사진은 1910년에 수단에서 발굴된 아우구스투스의 두상인데요. 발견당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눈동자까지 제대로 보일정도로 발견당시 보관상태가 너무 좋았기 때문이죠.

대영박물관 홈페이지(http://www.britishmuseum.org/) 에서 사진을 참조함.

이것을 3D프린터로 출력해봤습니다.

3D프린터 출력정보는 아래와 같습니다.
3D프린터 : Zortrax M200 3D프린터
소재 : ABS
소재 색깔 : Cool Grey
소재 사용량 : 33m (77g) 
레이어두께 : 0.09mm 
출력시간 : 14h 12m 
출력물 크기 : 83 * 91 * 125 mm 
출력물 부피 : 260 cm³ 
출력물 상태 : 서포트 제거하고, 후가공은 안함.


 

다양한 각도로 보시죠.

 

 

 

 

 

 

 

아우구스투스는 로마의 황제 가운데 가장 위대한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아우구스투스가 수립한 정책은 로마 제국이 존재하였던 기간에 계속 사용되었고로마에 의한 평화”(Pax Romana) 또는아우구스투스에 의한 평화”(Pax Augusta)라 칭송받았죠.
그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처럼 카리스마가 넘치는 지도자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셋째 아내인 리비아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지혜와 결단력이 있고 통찰력이 있는 정치가였습니다.
게다가 그의 정책은 매우 오랫동안 지속하였습니다.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로마 제국은 많은 점에서 변화가 있었습니다.

아우구스투스는 카이사르가 암살되고 후계자로 권력을 물려받지만, 
순탄하게 권력을 이양받은 것이 아니라, 아우구스투스 같은 정적들을 물리치고 권력을 차지합니다.

"그들은 어떻게 세상을 얻었는가"(아름다운 사람들.2012, 43~44쪽중에서)에 보면,
아우구스투스는 로마의 절대권력자 카이사르의 정당한 후계자였지만, 그가 후계자의 역할을 시작할 당시는 매울 불리한 위치에 처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우구스투스가 채 스무 살도 되지 않았을 때 카이사르는 귀족들에게 암살당하고 말았고, 아우구스투스에게는 카이사르가 유언장에 그의 이름을 썼다는 것뿐 아무것도 주어진 것이 없었다.

카이사르의 후계자라는 이름은 영광이 아니라 재앙에 가까웠다. 카이사르의 권력을 질시하던 수맣은 귀족들과 카이사르가 죽은 후 권력을 가지게 된 안토니우스는 그가 카이사르이 후계자로 지목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그를 죽이고 싶어 했다. 목숨을 부지하고 싶다면 로마로부터 멀리 도망가 숨는 것이 상책이었다.

그러나 10대 후반의 청년 아우구스투스는 카이사르의 후계자라는 영광되지만 혹독한 운명ㅇ을 외면하지 않고 전폭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멀리 도망가 몸을 숨기지 않고 몇 명의 호위병만 데리고 로마로 당당히 입성했다. 대신 그는 카이사르의 후계자라는 영광 하나만 가진채 한꺼번에 많은 것을 얻기 위해 무리하지 않았다.

그는 앞남을 길게 보고 하나나 주어진 상황을 치밀한 전략으로 극복해나갔으며, 그의 이러한 행보는 훗날의 승리를 위한 초석이 되었다. 그 결과 아우구스투스는 인생 최대의 라이벌이었던 노회하고 경험많은 안토니우스를 몰아내고 마침내 로마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카이사르조차 이루지 못한 강력한 황제권을 획득하고 로마 귀족들을 발아래 두었다.

암살당한 카이사르의 후광만 가진 채, 아무 것도 없는 것보다 더 못한 불리한 상황에서 아우구스투스는 남다른 지략과 치밀한 전략, 남다른 용인술로 로마를 얻고 이른바 팍스 로마나라는최고의 시대를 이끈 가장 존엄한 자(아우구스투스)가 되었다. 

라고 언급되고 있습니다.

외모도 출력물에서 보는 것 처럼 잘 생긴 얼굴이네요.
용모와 자태에 기품이 어려 있고, 평생 언제 어느 때나 아름다워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중략) 그의 눈은 밝고 맑으며 형형히 빛났다. (중략) 머리칼은 엷은 금색이고 약간 곱슬머리였다. 양쪽 눈썹은 붙어 있고, 귀는 보통 크기였다. 콧마루는 끝에서 약간 솟아오르고 그 밑변이 안쪽으로 약간 구부러져 있었다. 피부는 거무스름하지도 않고 희지도 않고 딱 중간이었으며, 키는 작았다.
— 수에토니우스(박광순 옮김) (1998). 《풍속으로 본 12인의 로마 황제》. 풀빛미디어. 1권 170쪽.

아우구스투스는 사후에 신격화되었습니다.
그 결과 많은 수의 아우구스투스 동상과 흉상이 제작되었고, 현재까지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아우구스투스 신앙(Divus Augustus)은 391년에 테오도시우스 1세가 기독교를 국교로 삼을 때까지 계속된다.

유명한 명언도 몇개 남겼지요.
"이길때 까지 살아 있으라"
"나는 진흙으로 된 로마를 물려받았고, 대리석의 로마를 물려줬다."


카이사르에 대한 내용은 아래 글을 참조하세요.
http://www.3dguru.co.kr/bbs/gallery/10006

 

<참조> 위키백과의 내용과, 대영박물관의 사진과, "그들은 어떻게 세상을 얻었는가"(아름다운 사람들), "풍속으로 본 12인의 로마 황제"( 풀빛미디어)의 내용을 참조했습니다.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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