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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프린터와 떠나는 테마여행 40탄]내성적인 쇼팽
2017-02-09 20:46:11

프랑스 파리의 The Réunion des Musées Nationaux 에 있는 쇼팽의 흉상을 3D프린터로 출력했습니다.

출력 직후의 모습입니다

출력 정보는 아래와 같습니다.
3D프린터 : Zortrax M200 3D프린터
소재 : ABS
소재 색깔 : Brown
소재 사용량 : 27m (63g) 
레이어두께 : 0.09mm 
출력시간 : 12h 13m
출력물 크기 : 59 * 70 * 130 mm 
출력물 부피 : 246 cm³
출력물 상태 : 서포트 제거하고, 후가공은 안함. (사진엔 안보이는데, 뒤통수쪽에 서포트가 있습니다.)


정면 모습입니다.
레이어 두께를 0.09mm 로 출력해서, 면이 참 매끈하게 나왔습니다.

다양한 각도에서 본 모습들입니다.

 

 

 

 

좀 더 확대해서 본 모습입니다.

 

 

 

 

쇼팽은 외모도 잘 생기고,  항상 깔끔하게 옷을 잘 입었다고 합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베스트 드레서 정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위에 출력된 모습만 보니 좀 그래서, 많이 알려진 사진도 한장...


주변 여건이 되는 분은 아래 쇼팽의 피아노 곡을 들으면서, 쇼팽 이야기를 보는 것도 좋을것 같네요
 

아래 연주는 2015년에 열린 쇼팽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우리나라 피아니스트 조성진씨의 연주입니다.
이 작품은 쇼팽이 짝사랑에 빠져있던 19세에 만든 것으로 전해지는데 관현악 파트의 비중을 최소화하고 피아노의 아름다운 선율을 극대화시킨 구성이 특징이라네요.
https://www.youtube.com/watch?list=PLqE8ia1hWiYl5yQQ8SMVwfS-SgIGoGDuF&v=d3IKMiv8AHw

 

프레데리크 프랑수아 쇼팽(Frédéric François Chopin, 1810년 3월 1일 ~ 1849년 10월 17일)은 폴란드의 피아니스트·작곡가이고, 가장 위대한 폴란드의 작곡가이자 가장 위대한 피아노곡 작곡가 중의 한 사람으로 여겨지죠.
 
쇼팽의 재능은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내어 그것이 모차르트에 비견될 정도였고,
6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8세 때에 공연을 가졌답니다. 그의 천재성이 바르샤바에 보도되면서 귀족들에게 관심을 끌게 되었고 자선공연도 하기 시작하였습다. 
그의 첫 피아노 레슨은 1816년에 바이올리니스트 보이치에흐 지브니에게 받게 되었는데, 1822년 스승은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고 하여 스스로 그만두었다고 합니다. 
12살정도에 벌써 스승이 가르칠게 없다고 했으니, 정말 천재인거 같네요.
 
그의 사랑은 그 당시 프랑스의 유명한 소설가이었던,
10살 연상의 조르주 상드와 연예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조르주 상드의 기념상 대리석. 파리의 뤽상부르 공원.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콘스탄치아 크라드코브스카와의 연애 이야기를 읽어보면 쇼팽의 내성적인 성격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래 글은 홍난파 선생님이 1937년도에 쓴 책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오래전 글이라, 지금은 잘 쓰지않는 표현들도 꽤 있네요^^

그가 비엔나로 가던 때를 전후하여 알게 된 콘스탄치아 크라드코브스카와의 연애가 그의 초련(初戀) 이야기로 더 유명하니, 물론 쇼팽의 연애사에 있어서는 다음에 이야기할 조르주 상드와의 교정(交情)이 그 제1위를 차지할 것은 재론할 필요도 없지마는, 그러나 콘스탄치아와의 로맨스도 역시 대작곡가의 심흉(心胸)에 한때는 비상한 정염(情炎)을 일으켜서, 그의 전반생(前半生)을 통하여 가장 크고 아픈 추억의 씨를 심어 놓은 것은 사실입니다. 
콘스탄치아는 바르샤바 음악학교의 학생으로 아리따운 소프라노 가수였던 바, 부녀자를 감상하는 데 있어서 결코 남에게 뒤떨어지지 않은 리스트도 이 여자를 한 번 보자 “사랑스런 어여쁜 소녀”라고 칭찬한 바이지만, 쇼팽 역시 어떤 음악회 석상에서 그와 초대면을 한 후부터는 젊은이의 혈조(血潮)가 불타듯 하는 자신의 정열을 그 소녀에게 경주(傾注)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섬약하고 수줍은 여성적 성격의 소유자인 쇼팽으로서는 내심의 불타는 정염을 한 번도 발표해 보지 못한 채, 반년이나 되는 세월을 오직 혼자서 오뇌와 고심과 수치와 주저 중에서 애태우고 지냈으니, 어떤 날 그가 자기 친구인 보이체코프스키에게 써 보낸 편지의 1절을 읽음으로써, 그의 심경을 족히 짐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 이것은 내게 대해서 차라리 불행일는지도 모르지만 ── 이미 충실하게 또한 진지하게 섬겨가려고 생각하는 이상(理想)의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크라드코브스카 양을 알게 된 지도 벌써 6개월이나 되는 바, 매일매야 심중으로는 그의 앞으로 뛰어가지 않은 때가 없지만, 아직 한 번도 그 여자와 면담한 일은 없습니다. 나의 마음이 그 여자와 함께 있을 동안에 나는 내 협주곡의 아다지오(제 2악장)를 작곡했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그 여자를 명상하고 있으려니까, 영감이 샘솟듯 하므로 한 개의 원무곡을 지었습니다. 이것을 이 글과 함께 증정합니다.”
이 편지 중에 말한 협주곡이란 세상에서 ‘초련(初戀) 콘체르토’란 별명으로 유명한 〈Concerto in F Minor〉요, 원무곡이란 〈Waltz in D flat(op.70)〉을 말한 것입니다.
--중략--
그는 비엔나의 도착한 후 처음으로 쓴 그의 일기에,
“그 여자의 자태가 내 눈앞에 어린다. 나는 벌써 그를 잊어버린 셈치고 있건만, 그러나 그의 모습은 내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고 하였고, 이 일기를 쓴 지 6년이 지난 1837년 6월에 파리에서 쓴 일기 중에,
“콘스탄치아, 콘스탄치아! 그의 형자(形姿)는 사라졌다가도 또다시 어렴풋이 떠오르는 달과 같이 내 눈 앞에 미소를 보여준다. 오오, 내 가슴 속에 잠들 콘스탄치아!”
라고 적혀 있음을 보더라도 콘스탄치아에게 향한 그의 짝사랑의 상흔(傷痕)이 얼마나 심각했는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방(一方) 콘스탄치아의 태도는 어떠했을는지? 그 여자 역시 쇼팽의 사랑을 감지하고 그를 사랑했었는지, 여기 대해서는 전연 불명(不明)입니다. 그러나 쇼팽 자신의 서간이나 일기를 종합해 보더라도 쇼팽이 그 여자를 일부러 왕방(往訪)한 일은 한 번도 없었고, 또 그 여자가 쇼팽의 심중을 감득(感得)하지 못했던 것도 분명합니다. 그리하여 쇼팽이 바르샤바를 떠난 지 2년 후인 1832년에 그 여자는 필경 타인의 소유가 되고 말았습니다.

쇼팽의 사랑 얘기를 읽으면서, "용기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다." 는 말이 생각났네요.
그리고, "말하지 못한 사랑은~~" 으로 시작하는 고 김광석 씨의 노래도 함께...

위키백과와 위키문헌을 참조했습니다.
모델링 데이터 소스위치 : https://www.myminifactory.com/object/chopin-at-the-runion-des-muses-nationaux-paris-12351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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