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3D프린터와 떠나는 테마여행 25탄]체조경기의 명가 루마니아 (리오올림픽 기념 출력물)
2016-08-10 16:12:23

브라질 리오에서 올림픽경기가 한창입니다. 우리나라 선수들의 승전보 소식이 전해질때마다 기분이 좋습니다.

 

루마니아가 공산주의 국가였을때, 여자체조로 유명했었죠. 

특히, 나디아 코마네치가 여자 체조경기 사상 처음으로 10만점을 받은게 상징적입니다.

 

아래 사진은 루마니아의 Deva 라는 도시에 있는 체조경기 공중제비를 하는 동상입니다.



3D프린터로 출력해봤습니다. 

3D프린터 : Zortrax M200

소재 : ABS

소재 색깔 : 살색

소재 사용량 : 18m (41g) 

레이어두께 : 0.09mm

출력시간 9h56m

출력물 크기 : 130mm * 37 * 115

출력물 부피 : 46.52 cm³

출력물 상태 : 서포트 제거후, 사포질로 면을 좀 다듬었음.

서포트 제거전 모습입니다.



서포트 제거후 사포질로 표면을 좀 다듬었습니다. 

원래 사포질을 안하려고 했는데, 하게 됐네요^^

제가 3D프린터로 출력한 누드 출력물이 몇 개 있는데, 

이 출력물만큼 여성미가 잘 표현되고, 신체구조가 완벽하게 구현된 작품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사포질로 출력물 표면을 다듬으면서 이 동상을 만든 작가의 뛰어난 감각에 여러번 감동했습니다. 

사포질하는게 오랜만에 즐거웠습니다

 


루마니아의 여자체조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나디아 코마네치" 선수입니다.

 

<아래 사진 중에 전광판에 1.00 으로 표시가 된 사진이 있는데요.

완벽한 경기를 펼친 소녀의 점수는 고작 1점. 사람들은 당황했고, 급기야 코마네치의 코치가 말도 안되는 점수에 항의하기 위해 일어서려는 찰나, 심사위원 중 한 명이 일어나더니 열 손가락을 펴 보이며 외쳤다. "1점이 아니라 10점! 10점 만점에 10점이오!" 1점으로 표기된 이유는 당시의 전광판은 최대 9.99, 즉 한 자릿수까지 밖에 표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열네 살에 코마네치는 1976년 몬트리올 하계 올림픽에 출전했다. 거기서 그는 이단 평행봉 연기로 사상 최초의 10점 만점을 받아 전 세계인들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그의 명연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153cm, 39kg의 가냘픈 몸매의 코마네치는 그 후 그 대회에서 10점 만점을 여섯 차례나 더 기록하며 결국 금메달 셋(개인종합, 평균대, 이단 평행봉), 은메달 하나(단체종합), 동메달 하나(마루운동)을 획득했다.코마네치는 이미 1975년 유럽선수권에서 체조사상 처음으로 10점 만점을 받아 세계무대에서의 만점을 예고했다. 올림픽 역사가들은 몬트리올 올림픽 여자 체조에서 루마니아의 코마네치가 무려 일곱번이나 만점을 기록하면서 금메달 3개를 차지한 것을 매우 중요하게 기록하고 있다. 

사실 체조는 기록경기가 아니라 인간의 눈으로 선수들의 플레이(또는 연기)를 보고 10점을 만점으로 해서 점수를 매기는 경기이기 때문에 9.9점이라면 몰라도 10점 만점을 주기가 어려운 종목이다. 신이 아니고서는 완벽한 플레이를 할 수 없다는 게 그때까지 체조계의 불문율이었던 것이다. 코마네치의 연기는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즉 심판들이 앞으로 ‘이보다 더 뛰어난 플레이는 없다’는 뜻에서 만점을 준 것이다. 여자체조는 코마네치를 기점으로 여성미를 보여주는 눈요깃거리 스포츠에서 기술이 가미된 ‘예술’로 승화했다. 1976년의 올림픽 대회 이후 그녀는 당시 공산국가였던 루마니아의 국민적 영웅이 되어 '영웅'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코마네치는 뛰어난 체조 실력만큼이나 별명도 많았다. 체조경기장에서는 웃음 짓는 일이 거의 없어서 ‘작은 바위 덩어리’로 불렸고, 가로 10cm의 평균대를 훨훨 날고 이단평행봉에서 공중을 헤집듯이 절묘한 묘기를 연출할 때는 ‘냉정한 작은 벼룩’이라고도 불렸다. 당시 시사 잡지 《타임》은 그를 “인간의 몸을 빌려 지상에 나타난 요정”이라고 극찬했다.

 

코마네치의 10점 만점을 받는 체조 경기 동영상입니다. 

이 동영상은 올림픽 위원회에서 만든건데, 유투브에서 들어가서만 보게 셋팅을 해놨네요-_- 

https://www.youtube.com/watch?v=Yi_5xbd5xdE

 

많은 사람들이 아디다스의 Impossible is nothing 으로 기억하는 이 광고는 실제 올림픽에서의 연기가 아니라,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코마네치가 연기한 평행봉 체조에, 광고 방영때였던 2005년 당시 미국의 최고 유망주였던 나스티아 리우킨(Anastasia Valeryevna "Nastia" Liukin, 1989~)의 연기를 합성시킨 영상입니다. 

이 동영상은 youtube로 안들어가도 됩니다. 바로 플레이가 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0L9J2C-Kk4

 

 

1961년생인 코마네치는 루마니아 오네슈티(Oneşti)에서 노동자인 어머니,금속노동자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서, 다섯 살 때까지는 평범한 소녀로 자랐지만 여섯 살 때 벨라 카롤리(Béla Károlyi) 코치의 눈에 띄어 ‘카롤리 체조연구원’에 입문한 뒤 하루 4~5시간의 훈련과 음식조절을 해가며 체조 요정의 꿈을 키워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화려한 선수생활 이면의 개인적인 삶에는 굴곡이 많았습니다. 1989년에 미국으로 망명하고, 처음에는 환대를 받았지만, 싸구려 행사에 불려다니는 등 고생을 하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서 지금은 많은 봉사활동을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기 위해서는 얼마나 노력해야 할까요?

우리나라 선수들은 대부분 어려서부터 체육 영재 교육을 받고, 유망하면 태릉 선수촌에 입소해서 오랜 시간동안 연습을 합니다만, 

그렇다고 모든 선수들이 메달을 획득하는 건 아니고, 오히려 메달을 못 따는 선수들이 더 많습니다.

우리 선수들은 거의 인생을 걸고 운동을 하는 듯해 보입니다. 그 젊은 나이에 모든걸 운동에 쏟아 부으니 말입니다.

 

모두들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들만 기억을 합니다. 그것도 오래가지 못하지만 말입니다.

은메달, 동메달을 딴 선수들은 금메달을 딴 선수들에 가려져서 주목을 못 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스포츠뿐만이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우리는 1등만 기억을 합니다.

1등만 살아남는다고도 합니다. 

몇명의 뛰어난 천재들이 세상을 이끌어간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우리사회에는 1등이 아닌 사람들이 대다수인데, 이 대다수의 사람들은 의미없는 삶을 살고있는걸까요?

1등에겐 1등의 역할이 있고, 꼴찌에겐 꼴찌의 역할이 있고, 꼴찌없는 1등은 있을수가 없습니다.

1등에겐 그에 걸맞는 영예가 있어야 하지만, 1등이나 꼴찌나 모두 함께 어울려 잘 사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등만 살아남는 사회가 아니구요. 

세상을 바꾸는 건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지혜를 가진 우직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메달을 따거나 못따거나, 이번 올림픽에 참가한 모든 선수에게 박수를 쳐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이 연습하면서 혼자 흘렸을 수많은 땀과 노력과 시간을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짝짝짝!

아래글은 박완서님의 "골찌에게 보내는 갈채"의 한 부분입니다.

마라톤 경기에서 일등은 이미 결승점에 도착한 상황이고, 뒤에서 달리는 선수들이 거리를 지나가는 모습을 보는 상황입니다.

 

<삼거리를 지켜 보고 있던 여남은 구경꾼조차 라디오방으로 몰려 우승자의 골인 광경, 세운 기록 등에 귀를 기울이느라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나도 무감동하게 푸른 유니폼이 가까이 오는 것을 바라보면서 저 사람은 몇 등쯤일까, 이십등? 삼십등? ---- 저 사람이 세운 기록도 누가 자세히 기록이나 해 줄까? 대강 이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이십등, 아니면 삼십 등의 선수가 조금쯤 우습고, 조금쯤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푸른 마라토너는 점점 더 나와 가까워 졌다. 드디어 나는 그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꼴찌 주자(走者)의 위대성'

 

나는 그런 표정을 생전 처음 보는 것처럼 느꼈다. 여태껏 그렇게 정직하게 고통스러운 얼굴을, 그렇게 정직하게 고독한 얼굴을 본 적이 없다. 가슴이 뭉클하더니 심하게 두근거렸다. 그는 이십등, 삼십 등을 초월해서 위대해 보였다. 지금 모든 환호와 영광은 우승자에게 있고 그는 환호 없이 달릴 수 있기에 위대해 보였다.

 

나는 그를 위해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중략>

 

어떡하든 그가 그의 이십등, 삼십등을 우습고 불쌍하다고 느끼지 말아야지 느끼기만 하면 그는 당장 주저앉게 돼 있었다. 그는 지금 그가 괴롭고 고독하지만 위대하다는 걸 알아야 했다.

 

나는 용감하게 인도에서 차도로 뛰어내리며 그를 향해 열렬한 박수를 보내며 환성을 질렀다. 나는 그가 주저앉는 걸 보면 안 되었다. 나는 그가 주저앉는 걸 봄으로써 내가 주저앉고 말듯한 어떤 미신적인 연대감마저 느끼며 실로 열렬하고도 우렁찬 환영을 했다.

 

내 고독한 환호에 딴 사람들도 합세를 해 주었다. 푸른 마라토너 뒤에도 또 그 뒤에도 주자는 잇따랐다. 꼴찌 주자까지를 그렇게 열렬하게 성원하고 나니 손바닥이 붉게 부풀어올라 있었다.

 

그러나 뜻밖에 장소에서 환호하고픈 오랜 갈망을 마음껏 풀 수 있었던 내 몸은 날듯이 가벼웠다.

 

그 전까지만 해도 나는 마라톤이란 매력 없는 우직한 스포츠라고 밖에 생각 안 했었다. 그러나 앞으론 그것을 좀더 좋아하게 될 것 같다. 그것은 조금도 속임수가 용납 안 되는 정직한 운동이기 때문에. 또 끝까지 달려서 골인한 꼴찌 주자도 좋아하게 될 것 같다. 그 무서운 고통과 고독을 이긴 의지력 때문에.

 

나는 아직 그 무서운 고통과 고독의 참 맛을 알고 있지 못하다.>

 

이상입니다. 

 

모델링 파일 위치 :

https://www.myminifactory.com/object/gymnasts-in-deva-romania-20149

 

<코마네치 선수의 사진과 내용은 위키피아와 나무위키의 내용을 참조했습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