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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프린터와 떠나는 테마여행 16탄] 레닌과 도서관
2016-07-11 12:20:39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1870년 4월 22일(구력 4월 10일) ~ 1924년 1월 21일)은 러시아 제국과 소비에트 연방의 위대한 혁명가, 정치경제학자, 정치철학자, 정치인, 노동운동가로 볼셰비키의 지도자였다. 공산주의자이면서도 특별히 마르크스의 과학적 사회주의 사상을 발전시킨 레닌주의 이념의 창시자이자, 마르크스 이후 가장 위대한 혁명사상가인 동시에 역사상 가장 뛰어난 혁명지도자로 인정받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흔히 알려진 니콜라이 레닌이라는 이름은 혁명가로서 그가 사용하던 가명이다. <위키피아 참조>

 

20세기 전세계 역사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쳤던 인물중의 한명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이념논쟁이 있고, 북한과 휴전중이니, 21세기의 우리에게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기도 하죠.

 

이태리 Cavriago에 있는 레닌 동상입니다.

 

 

아래 사진들은 Zortrax M200 3D프린터로 출력했습니다.

출력소재 : HIPS

소재 색상 : Cool Grey

레이어 두께 : 0.09mm

출력물 크기 : 70mm * 60mm * 125mm (부피:199.66 cm³)

출력시간 : 10h 16m

필라멘트 사용량 : 23m (55g)

출력물 상태는 서포트 제거하고, 서포트 제거한 면만 다듬었습니다. 사포질 등 후가공은 안한 상태입니다.

 


 

위에서 확대해서 본 모습입니다.

 

 

 

 

 
 

이것도 확대해서 본 모습입니다.
   

레닌의 독서에 대한 열의에 대해 좀 알아볼까요?

 

1900년의 최초 망명지인 스위스에서 레닌은 하루 15시간 동안 도서관에 처박혀 독서하고 집필을 했다. 특히 ‘불꽃’이라는 뜻의 신문 『이스크라Iskra』 발행에 열중했다. 이어 1901년 독일 뮌헨도서관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썼다. 망명 생활은 바로 도서관 생활이었다. 1902년부터 체류하게 된 런던에서도 영국도서관의 방대한 서고와 연구 작업을 위한 편리한 시설에 매료되었다. 마르크스,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간디, 예이츠, 이사도라 덩컨Isadora Duncan,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조지 버나드 쇼, 버지니아 울프 등이 드나든 곳이다. 특히 마르크스는 그곳에서 약 30년을 살았다. 그는 엥겔스를 만나러 맨체스터에 갔을 때에도 도서관에서 만났다. 사실 도서관만큼 만남의 장소로 멋진 곳이 다시없다. 서점은 그다음일 것이다. 레닌은 노동자들이 자주 가는 독서실에도 찾아갔다. 「니콜라이 레닌 : 도서관에서 혁명을 만든 사회주의자」(본문 56쪽) 

 

레닌은 실제로, 협상의 명수였고, 다방면의 방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의 기초가 방대한 독서량이었다고 합니다.

레닌의 도서관에서 지낸 것에 대해 좀더 알아볼까요? 

 

레닌은 나이 20세에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 법학과에 청강생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겨우 허락을 받았다. 그 이듬해, 청강생으로 사법시험을 치를 수 있는 허가를 받은 레닌은 시험에서 최고 점수를 받고 1891년 변호사가 되었다. 이때부터 레닌은 노동자들과 모임을 통해 파업, 노동법 등에 대해 토론을 하고, 그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레닌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사회주의를 깊이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레닌은 사회주의 이론 연구를 위하여 밤을 새워 책을 읽었다. 그러면서 지주와 마름에 의해 탄압받는 노동자와 농민의 참상을 목격한 그는 무료변론도 적극적으로 펼쳤다. 이 무렵 레닌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등과 헤겔의 《논리학》, 다윈의 《종의 기원》 등을 읽으며 폭넓은 독서에 빠져들었다.

레닌의 이러한 독서는 모두 도서관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도서관뿐만 아니라 심지어 당시 노동자들이 자주 가는 방 한 칸짜리 독서실도 자주 찾았다. 레닌의 이러한 경험은 훗날, 러시아혁명 성공 후 레닌도서관이라 불리는 러시아 국립도서관에 대규모 열람실을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누에가 고치를 틀고 그 속에서 나방으로 성숙해 가듯이, 레닌도 도서관의 책벌레에서 큰 뜻을 키우고 있었다.

 

레닌은 유럽 각국을 돌며 선진적인 마르크스주의자들과 교류를 하고 1895년 9월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귀국했다. 귀국하자마자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노동계급해방투쟁동맹’을 조직했다. 이러한 활동으로 당국에 체포되어 1년간 감옥에 갇혔다. 이 감옥생활이 레닌의 독서 폭을 한층 넓혀주었다. 당시 죄수들은 책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었고, 도서관을 이용할 수도 있던 것이 그에게는 더 없는 기회였다. 이때 이용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과학아카데미 도서관 등 모든 도서관이 평생 그의 반려가 된 곳이다.

 

레닌은 한때 시베리아에서 5년간 유배 생활을 했다. 이 유배지의 생활은 어쩌면 레닌 같은 독서가에게는 행복한 시절이었는지 모른다. (그는 유배지에서 부인 크루프 스카야와 결혼했으며, 대표작 《러시아에서 자본주의의 발전》을 집필했다.) 훗날 그의 아내의 회고에 따르면, 이때, 레닌은 생시몽, 푸리에와 같은 프랑스 사회주의자들, 헤겔과 칸트와 같은 독일 철학자들, 푸시킨과 톨스토이 등의 러시아 문호들의 책을 가리지 않고 읽었다고 한다. 심지어 에밀 졸라의 작품은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었다고도 했다.

 

이렇게 사회주의혁명을 위해 투쟁을 하던 레닌은 제정 러시아의 핍박을 피해 여러 차례 망명을 떠나야 했다. 망명지에서도 레닌은 하루 15시간 이상을 그곳의 도서관에 들어앉아 독서에 몰두하며 글을 썼다. 이때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레닌은 유물론자이자 사회주의자로 새로 다시 태어났다. 레닌의 일생을 돌아보면, 독서가 한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잘 알 수 있다. 레닌은 세상에 변혁을 몰고 온 불꽃같은 혁명가로 불리지만, 그 불꽃은 도서관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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